‘허리’는 우리 몸의 기둥이다. 잘만 관리하면 평생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만, 허투루 쓰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허리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청년’이다.
즉, 왕성한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를 가장 많이 걱정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할 세대들이 바로 ‘청년세대’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안타깝게도 ‘희망가득’ 대신 ‘희망포기’를 노래한다.
그동안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했다고 해서 ‘3포세대’로 불렀다. 그러다 내집마련과 취업을 포기한 ‘5포세대’를 거쳐 대인관계 및 희망까지 포기했다고 해서 한 때 ‘7포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어 ‘N포세대’로 불리고 있다.
2년 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정권이 바뀌었는데 청년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며 울먹인 내용이 보도된 적 있다.
필자는 그의 눈물에서 한참 꿈과 끼를 발산할 우리의 청년들이 마주한 팍팍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올해 1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대로 감소했고, 특히 사라진 일자리의 절반 이상은 20, 30대 청년들의 일자리라는 점은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을 대변한다.
다시 말하지만 청년은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고 국가의 미래를 지탱할 든든한 기둥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청년들에게 끊임없는 무한 사랑과 관심을 가져 달라는 의미가 녹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도 변하고 청년들의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가치관을 청년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졸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불안한 일자리들이 대부분인 현실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청년들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지금도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수십개의 일자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조차도 온갖 대책들을 우후죽순처럼 내놨지만 주먹구구식이고 시대흐름을 담아내지 못하다 보니 효과 자체가 미미했다. 청년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청년들 생각을 충분히 듣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된 정책을 이끌어 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청년관련 법안은 모두 229건이다. 그 중 62개 법안만이 처리됐다. 21대 국회에 넘겨진 숙제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정부 또한 서둘러 총리실 산하에 ‘청년정책추진단’을 설치, 청와대는 ‘청년비서관’을 신설하는 등, 다소 늦었지만 다행히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청년신도시 조성, 청년 주거 국가책임제, 모병제 도입 등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맞춤형 공약과 함께 청년 공약발굴에 골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고용, 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 청년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법적근거도 마련했다. 모두 20-30대들의 등돌림 현상을 막아보자는 취지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위로나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지적이 아니다. 역동성을 상실해 가는 시대, 청년이 마음껏 웅비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기성세대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로 불리는 청년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면 미래 사회의 ‘부메랑’이 된다. 청년층은 곧 중년층으로 진입해 양질의 일터와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이끌어 나아가야 할 세대들이다. 따라서 청년들 문제는 단순히 청년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활력과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청년에게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허리’는 우리 몸의 기둥이다. 잘만 관리하면 평생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만, 허투루 쓰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허리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청년’이다.
즉, 왕성한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를 가장 많이 걱정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할 세대들이 바로 ‘청년세대’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안타깝게도 ‘희망가득’ 대신 ‘희망포기’를 노래한다.
그동안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했다고 해서 ‘3포세대’로 불렀다. 그러다 내집마련과 취업을 포기한 ‘5포세대’를 거쳐 대인관계 및 희망까지 포기했다고 해서 한 때 ‘7포세대’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어 ‘N포세대’로 불리고 있다.
2년 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정권이 바뀌었는데 청년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며 울먹인 내용이 보도된 적 있다.
필자는 그의 눈물에서 한참 꿈과 끼를 발산할 우리의 청년들이 마주한 팍팍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올해 1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대로 감소했고, 특히 사라진 일자리의 절반 이상은 20, 30대 청년들의 일자리라는 점은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을 대변한다.
다시 말하지만 청년은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고 국가의 미래를 지탱할 든든한 기둥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청년들에게 끊임없는 무한 사랑과 관심을 가져 달라는 의미가 녹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도 변하고 청년들의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가치관을 청년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졸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불안한 일자리들이 대부분인 현실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청년들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지금도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수십개의 일자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조차도 온갖 대책들을 우후죽순처럼 내놨지만 주먹구구식이고 시대흐름을 담아내지 못하다 보니 효과 자체가 미미했다. 청년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청년들 생각을 충분히 듣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된 정책을 이끌어 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청년관련 법안은 모두 229건이다. 그 중 62개 법안만이 처리됐다. 21대 국회에 넘겨진 숙제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정부 또한 서둘러 총리실 산하에 ‘청년정책추진단’을 설치, 청와대는 ‘청년비서관’을 신설하는 등, 다소 늦었지만 다행히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청년신도시 조성, 청년 주거 국가책임제, 모병제 도입 등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맞춤형 공약과 함께 청년 공약발굴에 골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고용, 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 청년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법적근거도 마련했다. 모두 20-30대들의 등돌림 현상을 막아보자는 취지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어설픈 위로나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지적이 아니다. 역동성을 상실해 가는 시대, 청년이 마음껏 웅비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기성세대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로 불리는 청년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면 미래 사회의 ‘부메랑’이 된다. 청년층은 곧 중년층으로 진입해 양질의 일터와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이끌어 나아가야 할 세대들이다. 따라서 청년들 문제는 단순히 청년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활력과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청년에게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부형 경상북도 경제특보
출처 : 경북도민일보(http://www.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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